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 01.말-071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결혼

judy663 2020. 7. 7. 10:45

작가는 늦장가를 간 선배의 이야기를 꺼낸다. 선배는 최고의 신붓감을 찾기 위해 주말마다 호텔의 선 시장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직移職과 동시에 '짚신의 짝'을 찾았고 결혼 후에 이렇게 소회所懷(마음에 품고 있는 뜻)했다고 한다.

"이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비로소 우리를 위한 결혼을
생각하게 됐지.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한"

 

 

영화<로미오와 줄리엣(1968): 감독 프랑코 제페렐리, 출연 올리비아 핫세, 레너드 윗팅)

 

 
결혼은 인연이 닿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아무리 열렬하게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인 사랑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으며 '이몽룡과 성춘향'의 신분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도 그 마지막까지의 결과는 명확하지 않다.
요즘 방송되고 있는 '하트 시그널' 시리즈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청춘들의 만남과 썸을 보여주며 최근 종방된 '부부의 세계'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렸지만 불륜, 이혼, 폭력 등 여전히 막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

쫄깃쫄깃한 사랑으로 결혼에 도달한다고 해도 결혼이라는 현실 속에 그 사랑을 늘 같은 모습으로 지켜내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결혼이라는 현실은 여러 가지 고려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사랑은 이탈되거나 각각의 모습과 형태로 성숙되어 숙성된다.

 

영화<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감독 진모영, 출연 조병만, 강계열>


몇 해 전 그날 극장에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영화를 봤던 기억을 떠올린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알콩달콩한 모습으로  웃음 짓다가 나중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무려 76년을 해로偕老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틋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랑을 담아냈다. 우연히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을 보게 된 감독이 두 분과 같이 촬영한 1년 5개월의 영상을 1시간 반의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내놓았다.

어느 겨울날 백설이 내린 마당의 눈을 한가득 퍼서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청한다.
"할아버지, 첫눈을 먹으면 귀가 밝아진다니 많이 드시오"
"야(예)"

장난기 어린 할아버지,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 두 분은 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속에서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장면 하나하나마다 상대에 대한 신의와 배려가 느껴진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480만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입소문을 타고 전 연령층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중 20대의 관람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그들은 유행처럼 변하는 사랑이 아닌
단거리 선수처럼 뛰고 지쳐 떨어지는 사랑이 아닌
양철 냄비처럼 금방 끓고 순간 식어버리는 사랑이 아닌
이렇게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사랑을 갈망하고 또 확인하고자 했던 것 같다.

두 분은 존재는 76년이라는 결혼 시계도 이렇게 서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주신 선물 같다. 혼자 남아계신 강계열 할머니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시다가 할아버지께 가시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PS.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제목은?

고대 가요 서정시<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고조선):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 지음>

 

영화의 제목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는 '공무도하가'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공公: 님, 老公 중국에서 남편을 지칭하는 호칭
무无: 마시오
도渡: 건너다
하河: 강, 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