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02.글-115 긁다, 글, 그리움

judy663 2020. 9. 3. 11:47

 

 

 

긁다

 

글씨로 긁으면 글이 되고,

모양으로 긁으면 그림이 되고,

마음으로 긁으면 그리움이 된다고 말했다.

생각으로 긁고 마음으로 긁는다.

그저 흘러가버릴지 모를 그리운 것들은

각인하기 위해 긁는다.

 

시집 <아주 잠깐 울고 나서(2017): 작가 선우, 출판 이다북스>

 

'긁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렵다, 바가지, 카드, 머리' 등 지극히 속세적인 말들이 연상된다. 그렇지만 작가님들의 머릿속은 문학적인 의미로 가득하다. 글이 긁다에서 파생했을 모른다는 시각으로

생각을 종이에 긁으면 글이 되고
생각을 화폭에 담으면 그림이 되며
마음으로 긁으며 그리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긁다刮라는 단어로 '쓰다, 그리다, 그립다'로 의미를 확장해 가는 그들의 표현 능력이 참으로 아름답다.

마음으로 긁어서 만든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각양각색으로 다가올 것이다. 문득 과거 어느 시점의 인물이나 일들을 떠올리다 옅은 미소를 짓게 할 수도, 별안간 먼저 떠나간 이가 떠오를 땐 갑자기 사무치게 보고 싶어 눈물이 핑돌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요즘 '평범함 일상'도 그리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산다.

 

콘서트<BTS 2019년 서울 콘서트, 출처 텐아시아>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하던 그때

침을 튀기면 수다를 떨었던 그 시간

열정과 흥분으로 가득 찼던 공연장의 열기

따뜻한 라떼 한 잔과 함께 즐겼던 영화관 데이트

어디든 상관없이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게 해 준 여행


그리고 그래서 무심코 넘겼던 무수한 일상의 시간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그 일상이 어느덧 '그리움'이 되어 다가오는 요즘이다. 인생은 생각지 못 한 일들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이놈의 강력한 힘은 일상을 점차적이 아닌 순식간으로 바꿔 놓았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암울한 예측들, 독감처럼 우리를 따라다닐 거라는 꺼림칙한 뉴스가 쏟아지지만 2020년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언급한
'카르페 디엠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이다.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1990): 감독 피터 위어, 출연 로빈 윌리암스> 중에서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알게 된 요즘, 지금의 일상을 즐기며 충실히 보내는 것이 답임을 느끼고 다짐하며 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