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02.글-125 사람을 살찌우는 일

judy663 2020. 10. 8. 15:02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더 새삼스럽게 독서의 힘을 느낀다. 독서의 힘은 모두가 동감하는 바이지만 이건 마치 운동과 식이요법이야 말로 최고의 건강한 다이어트 비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서에 관한 일화 몇 개나 인물 몇 명쯤은 이미 알고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에디슨을 발명왕으로 이끈 에디슨의 독서 시작은 어머니의 책 읽어주기로 시작되었으며 그 후 그는 도서관 가로세로를 모두 읽었을 정도로 발명왕 이전에 독서왕이었다.

 

 

<독서가 빌 게이츠, 출처 네이버>

 

그리고 빌 게이츠의 '동네 도서관이 나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그는 하바드 졸업장보다 독서습관을 더 높게 평가한다. 여전히 서점 신간에 빌 게이츠가 추천한 도서란 말이 붙을 정도로 그의 책에 대한 열정과 전파력은 엄청나다.

아직까지도 매일 자기 전 1시간 정도의 시간을 독서에 투자한다고 하니 세상 누구보다 바쁜 그에게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인생에서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 가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책을 읽지 않으면 근거 없이 남을 비방하게 되므로 독서를 태만히 하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다. 

 

-조선시대 초학 교재 《추구(推句)》-중에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을 옥중에서 남긴 안중근 의사는 사형을 집행하는 마지막 순간 소원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라며 읽고 있던 책의 마지막 부분을 다 읽은 다음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사형을 앞둔 그의 앞에 주어진 5분이라는 시간을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마무리 짓고 간 모습은 그에게 독서가 그 어떤 것보다 삶의 소중한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세종대왕 동상, 출처 네이버>

 

조선의 4대 왕인 세종대왕도 독서왕으로 유명한데 세종대왕 시대에 이뤄낸 수많은 업적은 유학, 역사, 천문, 음악, 의학, 법학, 어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그 속에서 얻어진 지식의 역량일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 장영실과의 콜라보로 만들어낸 과학기구, 아악雅樂의 정비, 농사 기술의 진보 등 헤아릴 수 없는 성과와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 특허청이 있었다면 세종 재위 기간의 특허권은 단연 그 질적이나 양적에서 가장 빛날 것이다.

세종대왕 세자 시절의 일화를 살펴보면 세종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독서 사랑으로 눈병이 나자 이를 염려한 아버지 태종은 세자의 방에서 모든 책을 치워버렸다는데 다행인지 병풍 뒤에 책 한 권이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세종은 이 책을 천 백번이나 보았다는데 총명한 분이었으니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외우고 간파했을 듯하다.

 

그리고 세종은 신하들을 위한 '독서 휴가제'를 시행했는데 젊은 인재들이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1~3년 정도 독서 전담시간을 주었다. 관리로 등용된 인재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읽은 내용을 정리하여 리포트를 올렸다고 한다.

독서를 사랑하는 관리였다면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더라도 반의무와 반강제 덕분이라도 책을 접하고 숙제를 내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최고 독서왕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1604~1684)을 소개하려고 한다. 초등학교 5-2학년 국어책에 소개된 김득신은 오히려 어른들에게는 조금 낯선 인물임에 틀림없다.

김득신은 효종이 '용호龍湖'란 시를 칭하며 당시唐詩에 넣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했을 정도의 당대 유명한 시인이자 학자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반 학자와 별다른 차이점이 보이지 않지만 그의 일생을 찬찬히 살펴보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일생을 통해 증명해 내신 분이다.

 

 

古木寒雲裏(고목한운리)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있고
秋山白雨邊(추산백우변) 가을 산에 소나기 희뿌였네
暮江風浪起(모강풍랑기) 저물어 가는 강에 풍랑이니

漁子急回船(어자급회선) 어부가 급히 배를 돌리네

                                               
-용호龍湖, 김득신-

 


진정한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인물인 김득신은 할아버지 김시민金時敏, 아버지 김치金緻 모두 과거에 급제한 인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 김치는 노자老子에게 거북이를 받는 태몽을 꾸었다고 하니  모든 집안의 눈은 모두 득신에게 향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김득신은 열 살에 겨우 문자를 터득하였고 나이 스물에 스스로 시 한 편을 지었다고 한다. 열 개를 가르치면 한 개도 깨우치기 어려운 둔재鈍才였다고 하는데 이는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기억력에 손상을 입은 탓이라고 한다.

 

당시 과거 급제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조선시대에 집안의 우려와 걱정은 늘 김득신에게 향했을 테지만 아버지 김치는 늘 격려와 사랑을 보냈으며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공부란 과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가 될 것이다.


 

진주 목사牧使를 지닌 할아버지 김시민, 대제학大提學을 지닌 아버지 김치까지 인재 집안의 둔재鈍才로 시작해 말년에는 스스로 갈고닦아 스스로 빛나는 인재人才로 탈바꿈한 그는 조선 시대의 다독왕으로 불리는 정약용 조차 그를 조선 최고의 독서왕으로 치켜세웠다. 물론 그의 독서 기록에 관한 어마 무시한 기록은 과장된 점이 없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말이다.

 

고서<사기史記 백이열전: 사마천,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읽으면 잊어버리기가 일상이었던 그에게 '사기史記 백이전伯夷傳'은 무려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하며 '만 번 이상 읽은 책'만 골라 독수기讀數記를 작성했는데 36개 고서古書에 담긴 섬세한 평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열정적인 공부 모드로 선생님 댁에서는 하인부터 기르는 강아지까지 노래처럼 자동으로 글을 읊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 노력으로 그는 59세에 문과에 급제해서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모방의 시가 아닌 자신만의 세계 구축해 냄으로써 당대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직접 작성했다는 묘비문(아래 사진 내용을 참고)을 보면 '실패란 없다. 더 이상 도전하지 않을 뿐'이란 말은 그를 위한 말이다.

 

<김득신 묘비문, 출처 네이버>

 

 

만약 당시 김득신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한미寒微한 집안이었다면 아버지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다면 본인의 지극한 노력이 없었다면 시인 김득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지금 그가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부모의 격려와 지지가 있더라도 10살까지 글을 깨우치지 못했다면 분명 학교에서도 병원과 심리 검사를 권하며 학습 부진아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요즘 같이 정보를 쉽게 찾고 볼 수 있는 시대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독서는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대한민국 문맹률이 1%인데 반해 성인 실질 문맹률이 75%( 즉, 문자 해독능력 25%)에 달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물론 이는 문장 내에 한자어, 영어, 줄임말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존재하지만 성인이 된 후 책을 읽는 시간이 적다 보니 설명서 등 어렵거나 새로운 단어들이 적힌 책자들을 기피하고 그 해독 능력도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인데 이는 독서량과도 관계가 있다고 언급되었다.

 

<한국어 번역: 책속에 길이 있다, 출처 개인소장>

 
다양한 영상 매체, 오디오 북 등의 매력에도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수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종이 책 읽기를 강조하는 데는 그 이유가 분명 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시간을 내어 운동하듯이 마음의 건강을 위해 매일 10분이라도 자체 의무 독서 시간을 가져보자. 디지털 시대 수많은 정보로 자칫 방향을 잃을 수도 있지만 단언斷言하건데 책 속에는 분명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