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흐르다

경계에 흐르다-'사람'으로 산다는 것

judy663 2020. 12. 29. 08:10

성공한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성공 '기억'이며 혁명가에게 가장 큰 적은 혁명 '기억'이다.

'사람'이 기억에 갇혀 더 이상 창의적 돌파가 불가능해지면 '사람'의 형상은 하고 있으되 진짜 혹은 참된 '사람'이 아니다. 이는 주도권이 '기억'에 있기 때문이다.

 

한漢나라를 개국한 유방劉邦은 유학자들은 탁상공론
卓上空論만 일삼는다며 무시했지만 유학자 육가陸賈의 충고를 언짢아하면서도 부끄러워하며 받아들였다.

'나는 말 잔등에 올라탄 채 천하를 얻었다. 뭐가 부족해서 시경詩經, 서경書經이니 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가'

'폐하는 말 등에서 천하를 얻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말 등에 올라탄 채로 천하를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식도 인격도 높지 않았던 유방이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고 육가의 말을 받아들이며 '기억'에 갇히지 않는 힘을 가졌던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다.

'기억'이라 함은 관념으로 지어진 틀, 이념이나 신념을 말한다. 자기를 익숙함에 머무르게 하는 가치관인데 정해진 마음, 즉 성심成心이다. 이 성심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만의 고유하고 진실된 내면의 활동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는 것이다. 장자에서는 진인眞人, 부처는 진아眞我라고 한다.

이'사람'은 집단이 공유하는 이념, 신념에 좌우되지 않고 독립되어 자신만의 빛을 발휘한다.

 

장자 내편內編 소요유逍遙游 박이야기를 보면 어느날 혜자는 위왕에게 받은 박씨를 심었다. 너무나 커다란 박이 열려 물주머니로 쓸 수도 없는지라 부숴 버리고 말았다.

 

 

 


이에 장자는 혜자를 '꽉 막힌 사람'이라 칭하며 그 박의 속을 파내 배를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뛰워 놓고 탈 생각을 하지 못했느냐며 안타까워한다.

혜자에게 박은 보통의 사람들과 같이 물을 저장하고 떠먹는 도구로 작용하지만 장자는이 두 기능을 뛰어넘어 '큰 박의 속을 파내 배로 쓰는' 창조를 이루어냈다.

혜자와 장자 사이에는 '덕德'이라는 존재의 유무가 존재하는데 이 덕은 '기억'이나 '이념',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한계를 돌파하는 힘이다.

즉,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정해진 틀을 지키려 애쓰기보다 그 틀을 돌파하여 전진하려 애쓰는 과정이며 편안함보다는 불안하고 어색, 생경하더라도 '나'만의 기준을 생산하려 노력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