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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한국어-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

judy663 2025. 2. 21. 07:00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있던 풍산 유 씨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을 모체로 하여 건립되었다.

병산 서원 입구, 출처 개인 소장

선조 5년에 서애 유성룡(柳成龍, 1542~1607년)이 풍산현 북쪽에 있던 서당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5년에 존덕사尊德祠를 건립하면서 향사의 기능을 갖춘 서원이 되었다. 그 후 철종 14년(1863년)에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병산 서원 복례문, 출처 개인 소장

✅️광영지光影池

병산 서원 광영지, 출처 개인 소장

선비들이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이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데, 이러한 한국 전통 연못의 모습을 '천 원 지방天폐地方'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는 뜻으로,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인 우주관이자 세계관을 나타낸다.

✅️강학 영역  

강학 영역 표지판, 출처 개인 소장

입교당, 동재, 서재 강학 영역은 학문을 배우는 공간으로, 강당인 입교당立教堂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로 구성되어 있다.


✅️입교당

병산 서원 입교당, 출처 개인 소장

입교당은 유생들이 배우고 원장과 교수가 거처하는 서원의 중심 공간이다.

강학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는데, 오른쪽 명성재明誠齋는 원장이 사용하였고 왼쪽 경의재敬義嘉는 교수와 선비들이 사용하였다.

✅️동재
앞마당 좌우에 마주 보고 동재와 서재가 있다.

동재에는 '동직재動直南'라는 현판이 있다

병산 서원 동재 동직재, 출처 개인 소장

동재의 큰 방에는 상급생들이 기거하였고, 작은 방은 학생회장인 유사有司가 사용하는 독방이다.

병산 서원 동재, 출처 개인 소장

✅️서재
서재에는 '정허재靜虛肅'와 '장서실' 제품'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서재 정허재, 출처 개인 소장

서재의 큰 방에는 하급생이 기거하였으며, 작은 방은 책을 보관하기 위해 온돌은 놓지 않고 마루를 깔았다

병산 서원 서재, 출처 개인 소장

✅️만대루

병산 서원 만대루, 출처 개인 소장

만대루는 유식공간으로 휴식과 강학을 하였다. 서원에서 향사를 지내거나 행사를 할 때 개회와 폐회를 알리는 곳이기도 하고, 주로 강학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만대루는 목재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장식과 기교도 없이 꼭 필요한 요소만을 갖추고 건축했다.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기둥들과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등은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한국 전통 건축의 빼어난 멋을 그대로 보여준다.

만대루를 바라보며, 출처 개인 소장

✅️존덕사

병산 서원 존덕사 입구, 출처 개인 소장

광해군 5년에 존덕사尊德祠를 건립하면서 향사의 기능을 갖춘 서원이 되었다. 서애와 수암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병산 서원 존덕사, 출처 개인 소장
병산 서원 향사 음식을 준비하던 공간, 출처 개인 소장
사당에 올릴 제수를 준비했던 진사청, 출처 개인 소장

✅️달팽이 모양 뒷간

병산 서원 밖 달팽이 모양 뒷간, 출처 개인 소장

유생들을 돕는 일꾼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다. 문도 없고 지붕도 없이 돌담으로 둥글게 감아서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달팽이와 거의 같을 정도로 비슷하다.

담장의 한쪽 끝이 다른 쪽 끝에 가리기 때문에, 문이 없어도 바깥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독특한 구조이다. 서원이 처음 세워진 17세기 초에 지어졌고, 2003년 보수하였다.

출처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