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흐르다

경계에 흐르다-철학이 의자가 되는 방법

judy663 2021. 1. 13. 07:30

얼치기 철학은 현실을 떠나지만, 진정한 철학은 현실로 돌아온다.

-칼 야스퍼스 '실존철학'-

 

 

철학을 잘 모르면 철학과 현실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보지만, 철학을 제대로 알면 철학이 곧 현실이고 현실이 곧 철학임을 알게 된다.

우리는 철학이나 철학의 친구들을 현실과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 철학이나 문화나 예술은 항상 현실 너머의 여분의 어떤 것,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가 충족되었을 때 향유하는 것으로 치부置簿되는 탓이다.

이는 우리가 '철학적 레벨'에서 작동하는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꾸려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의 단어를 살펴보면 지성과 친한 것 바로 philosophy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철학적 시선에서 박물관을 감상한다는 것은 개개의 유물을 보는 것이 아닌 박물관 전체를 하나로 놓고 유물들의 시간적 흐름 속에 연결되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보는 것이다.

'동선을 읽는다'는 것은 지성의 힘으로 가능하다. 지성적 시선은 곧 철학적 시선이다. 곧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동선을 읽어 내려는 의지에서 새로운 것이 발견된다.

우리가 한 단계 올라서서 나가야 할 길은 철학이 우리의 의자가 되는 길이다. 철학적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자.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