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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한국어-송광사

judy663 2024. 8. 1. 07:00

#송광사松廣寺

송광사는 통일신라 말 혜린선사慧磷禪師가 창건하였고, 고려시대 때 보조국사가 한국 불교를 중흥시킨 정혜결사定慧結社 도량으로 송광사를 택한 뒤 총 16분의 국사스님을 배출하였다.

➡️송광사 물소리

송광사 입구, 출처 개인 소장

조선시대로 들어와 부휴선수 스님과 제자들이 머무르면서 승보사찰의 전통을 이어 왔다. 근래에는 효봉, 구산스님이 그 전통을 이어 한국 정신 사상사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1969년 종합 수도도량인 총림叢林이 된 송광사는 선원, 강원, 율원 등의 기관에서 스님이 상주하며 참선과 경전을 공부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행도량이다.

송광사 성보 박물관, 출처 개인 소장
성보 박물관 개관 시간, 출처 개인 소장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영산전 석가모니후불도, 출처 개인 소장

이 불화는 영취산에서 설법하시는 모습을 그린 불화로 영산회상도霊山會上圖라고 한다.

1725년 호남을 대표하는 화승인 이겸 스님이 제자 17명과 함께 석가여래의 생애를 8폭에 담은 팔상도와 함께 그려 영산전에 봉안하였다.

2003년 국가문화유산인 보물로 지정되었다 2024년 국보로 승격되었다.

송광사 영산전 팔상도(도솔래의상), 출처 개인 소장

도솔래의상은 석가여래의 전생인 호명보살이 꿈속에서 마야 부인의 옆구리로 들어가 마야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는 장면으로 행종幸宗 · 향민向敏스님이 그렸다.

불화는 크게 3 부분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호명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마 야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 임신하게 되는 모습, 이를 정반왕에게 알리고 바라문이 점을 쳐 성자가 태어날 것을 예견하는 모습 등의 내용으로 장면마다 글귀를 써넣어 확실하게 이해를 돕고 있다.

성보 박물관 앞 전경,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대중 화장실, 출처 개인 소장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경내 입구,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살짝 둘러보기

바사리구시,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3대 명물 중 하나인 '비사리구시'는 느티나무로 만든 대형 용기다.

비사리 구시는 송광사 인근의 보성군 문덕면 내동리 봉갑사 근처 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으로 18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그 용량은 2,600여 리터에 달한다. '송광 사지'에 따르면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밥을 짓는 곳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송광사 대웅보전, 출처 개인 소장

한국전쟁 이후 송광사 내 많은 건물이 화재로 전소되었는데 그 후 대웅전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이 급하게 중건되었다.

그러나 1969년부터 구산 큰스님의 발원으로 전면적인 중창계획이 수립되었으며, 이때 대웅보전은 108평 규모의 십자형 평면형식을 갖춘 최초의 사찰 본전으로 이룩되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5칸에 다포양식의 겹팔작지붕 형이다.

송광사 대웅보전,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관음전, 출처 개인 소장

관음보살을 모신 이 건물은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 규모로 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본래는 1903년 고종황제와 황후, 황태자를 위한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전각으로 세워졌다가 1955년에 관음전으로 바뀌었다.

탱화 및 해석,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국제선원, 출처 개인 소장
종구루, 출처 개인 소장
천왕문, 출처 개인 소장
출처 개인 소장

➡️송광사 사천왕문을 나서며 물소리

출처 개인 소장
고향수枯香树, 출처 개인 소장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송광사에 처음 왔을 때 짚고 온 지팡이를 꽂으며 시를 남겼다.

爾我同生死 이아동생사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으니
我謝爾亦然 아사이역연
내가 떠날 때 너도 떠나고
會看爾靑葉 회간이청엽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方知我亦然 방지아역연
나도 그런 줄 알리라.


그 뒤 지팡이에서 잎이 피어 자라다가 보조스님이 입적하고 이 향나무도 따라서 말라버리므로 고향수枯香树라 하였다.

고향수 표지판, 출처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