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1+1=2'
에디슨: '1+1=1', 왜 틀리나요?
'찰흙 한 덩이에 찰흙 한 덩이를 더하면 여전히 한 덩이이므로 1+1=1일 수도 있도 있어요'
선생님: (부글부글)
1847년생인 에디슨을 생각한다면 그는 1850년 이후에 학교에 입학했을 것이고 에디슨의 이런 질문들은 당시 '원래 그래' 선생님의 눈에는 수업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며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학교 수업 부적응자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은 당시 그가 퇴학을 당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원래 그런 거라니까'
작가의 언급처럼 참으로 신통방통한 문장이다. 어떤 상황, 어떤 문제에서나 모든 일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정리해 버린다. 다른 해석과 호기심을 원천 차단하는 참으로 심묘한 힘이다.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질문과 호기심보다는 '원래'라는 단어에 익숙한 일상을 살고 있다.

500여 년 전 초기 르네상스 시대를 살다 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를 수식하는 말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의 이름 앞에 덧붙여지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 과학자 등의 직업을 보면 그가 예술, 과학, 의학, 천문 등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그의 '호기심 노트'는 경매에서 1994년 빌 게이츠가 약 340억 원에 사들이면서 더 유명해졌으며 다빈치는 이 72쪽으로 구성된 한 권의 노트에 다양한 관심사를 순서 없이 기록했으며 자신이 몰두한 개념을 간단한 스케치로 표현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으며 생각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몇 년에 걸쳐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배워야 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했으며 여기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대상을 관찰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다빈치 노트 중간중간마다 적혀있는 '그래서 너는 무엇을 남겼는가' 메모처럼 그는 일을 하면서 또 다른 길로 빠지기 부지기수不知其數였는데 이에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참지 못 하는 성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그가 51년 동안 작업한 회화 작품 중 15개 작품만이 완성작이라고 하니 그에게 작품을 의뢰한 사람들은 고도의 인내력을 스스로 배양했을 것이다.
'모나리자'는 그의 능력을 집대성 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의 호기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모나리자(모나-부인, 리자-엘리자벳) 즉 엘리자벳 부인의 미소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인체 해부로 알게 된 눈의 시각정보 과정, 당시 보티첼리처럼 정확한 윤곽선 대신 자신이 고안해낸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통해 인물의 윤곽선을 일부러 흐릿하게 만들어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가 어디에 가든 늘 들고 다니며 16년간 덧바른 이 미완성의 작품은 그의 호기심을 기반으로 더 빛을 발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 한국에서 호기심은 너무나 쉽게 해소되어버리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존재한다. 무언가 호기심이 발동하면 바로 손 안의 '기묘한 상자'를 열어 바로 일망타진一網打盡해 버린다. 남이 써 놓은 자료를 읽고 소비하는 편리함 이면에 생각하는 과정 및 사고 자체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은 건 아닌지 우려된다.
유태인의 교육은 '1+1=' 아닌 '1+1'의 답을 요구한다. 전 세계 유대인의 창의성의 시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의 말처럼 정답은 없다.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오답이 될 수도 있다. 복잡한 사실과 다양한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매 순간을 관찰하고 기록한 다빈치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가 지녔던 호기심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본다면 삶의 질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호기심이 나의 경쟁력이 되어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부터 관심의 눈으로 지켜봐야겠다.
'하늘은 원래 파랗다'가 아닌 다빈치가 죽을 때까지 고민한 '하늘은 왜 파란가?'를 상기해 본다.
우리는 이따금 하늘의 기운을 퍼붓 듯, 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능이 내리는 것을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조르조 바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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