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01.말-105 부모와 자식을 연결하는 끈

judy663 2020. 8. 25. 15:44

이중섭, 백년의 신화-부산展, 출처 부산시립미술관


역사책 속 천재 화가 김홍도와 미인도 신윤복을 제쳐두고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화가는 대향大鄕 이중섭이 아닐까 한다.

그는 1916년 평안남도 평원 출생으로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중섭, 백 년의 신화'를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보고 온 기억이 난다. 이 전시회를 통해 '이중섭=소'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작가의 삶 속과 작품 속에 더 크게 자리 잡은 '가족'이라는 주제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중섭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면 그는 오산五山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당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소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수많은 습작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오산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던 스승 임용련은 미국 예일대를 졸업한 후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지극히 보기 드문 비 일본 해외파 예술가였다.

중섭의 재능을 알아본 그는 '네가 그리고 싶은 소를 그리려면 떠나라'는 말과 함께 일본 유학을 권했다고 한다. 친가와 외가 모두 재력가였던 이중섭은 당시 백화점을 경영하던 형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이중섭의 아내(2014), 출처 다큐멘터리 영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도쿄 문화학원 미술과에서 1년 후배였던 그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게 되고 1945년 원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가 평생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마사코의 한국 이름은 '이남덕李南德'으로 남쪽에서 온 덕이 있는 여자라는 의미로 이중섭 자신이 직접 지어줬다고 한다.

부부(1953),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부부'라는 이 작품은 원산 신혼집에서 마사코가 기르던 닭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가 그린 가족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끈, 하나의 선' 등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마리의 닭이지
만 마치 하나의 선처럼 부부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1952~1953), 출처네이버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이중섭 가족은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피난을 가게 된다.

'피난 간 제주도에서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았던 10개월 동안은 내 생애 마지막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1평 남짓 작은 방에서 사랑하는 아내 남덕, 태현 그리고 태성과 함께 한 시간은 비록 곤궁困窮했지만 그의 작품 속에 가족과 아이라는 주제가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점이다.

'물고기와 노니는 세 아이'는 1947년 먼저 떠나간 첫아이와 태현, 태성의 모습을 그려낸 듯하다. 이미 떠나간 아이지만 중섭은 낚싯줄, 물고기와 더불어 세 아이들을 끊김 없는 하나로 묶어 놓았다.

아이만큼 큰 물고기와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제주도 바닷가에서 지냈을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과 더불어 중섭의 가슴속에 묻은 첫아이에 대한 사랑이 떠올라 가슴이 시리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1954),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1952년 장인어른의 부고 소식과 더불어 사랑하는 아내의 폐결핵과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아들을 위해 가족을 일본으로 보낸 중섭은 당시 한일 국교 단절로 일본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중섭과 가족을 연결한 고리는 바로 수많은 편지였는데 그중 하나인 이 편지는 일본어에 문외한門外漢인 나 같은 이가 보아도 그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는지 엿볼 수 있다.

'最愛 賢妻 南德 善良 天使'


그리고 편지지를 가득 채운 그의 그림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가족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는지 전해지는데 편지 속 남덕과 아이들을 그리는 그의 붓은 멀리 있는 그들과 연결시키는 고리이고 편지지 윗부분 별과 해와 달은 점선으로 다시 이어져 가족은 편지로 다시 연결된다. 애틋한 그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1950대),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하루속히 일본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하고자 했던 중섭의 열망은 그의 편지 속 소달구지 위에 가족을 태우고 가는 그림에서도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가 그린 가족을 향한 그림은 어떤 식으로도 연결되는 고리가 있는데 소를 끌고 가는 끈은 달구지 위의 아들과 아내를 하나로 묶는 구심체가 된다.

'아빠가 오늘 엄마와 태현이 태성이를
소달구지에 태우고 아빠는 앞에서 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어.
소달구지 위쪽은 구름이야.'


1953년 친구 구상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가족과 보낸 꿈같은 며칠을 뒤로하고 그는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남덕과 아이들을 그리워하다 편지 속 소달구지를 끌고 결국 남쪽으로 가지 못하고 1956년 41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홀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와 함께 지낸 7년 남짓의 행복한 추억으로
60년을 버텼어요'

-사코 이남덕-


올해 99세이신 마사코 이남덕 할머니는 현재 도쿄에서 작은 아드님과 같이 거주 중이시라고 한다. 남편이었던 중섭에게 그림이 가족을 연결하는 끈이었 듯이 마사코에게 행복한 추억은 그를 그리워하고 그녀의 삶을 지탱한 힘이었다. 남덕 할머니께서 남은 여생도 그 추억으로 편히 지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애칭 '아고리', '아스파라거스 군'

이중섭-아고리
턱을 뜻하는 일본어 '아고 あご'+중섭의 성 '이李', 턱이 길었던 중섭에게 일본인 친구들이 붙인 별명

마사코-아스파라거스 군君
마사코의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와 닮았다고 해서 이중섭이 붙인 별명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