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약 오르면 진다
'약 오르면 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심리적으로 동요하면 이길 수 없다는 의미이다.
복잡 미묘한 상황을 다루기 어렵게 만드는 건 바로 '확고한 마음'이다. '확고한 마음'을 가진 이는 스스로 분명하고 명료해지는데 진위眞僞나 선악善惡에 대한 판단도 모두 여기에 의존한다.
문제는 선악 판단이 명료해지면서 이것이 '도덕적 우월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친구를 하나 줄이고 적을 하나 늘이는 상황을 만들기 쉽다.
'확고한 마음'은' 팽창보다는 수축이 강한 탓에 미래보다는 과거지향적이다.
도덕적 우월감, 확고한 마음은 모두 자신의 조작물이다. 이런 확고한 마음으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이 주체가 아닌 남이 만들어낸 기준을 표준 삼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
즉,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한 내부의 기준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기준의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보편적 기준과 이념은 '지난 가치' 즉 조박糟粕, 찌꺼기일 뿐이다.

인간으로 성숙해 가려는 수양은 '확고한 마음'을 줄이거나 소멸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확고한 마음' 즉 보편적이며 객관적 가치가 옅어지면 자신이 삶의 주체로 등장해 내가 보고 싶은 거나 봐야 하는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다.
이는 세계를 수용하는 능력의 확장으로 연결되어 '약 오르다 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장자(莊子) 천도편(天道篇)의 '윤편'(輪扁)
제(齊) 나라 환공(桓公)이 대청 위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윤편이 대청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환공에게 묻는다.
"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성인(聖人)의 말씀이니라."
"그 성인은 지금 살아계십니까?"
"이미 돌아가셨느니라."
"그렇다면 왕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糟魄, 조백)입니다."
왕은 크게 노하여 윤편에게 합당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윤편은 이렇게 말한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 들어가기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깎는 것은 손의 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입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더 깎고 덜 깎는 것은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저로부터 전수받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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