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01.말-108 애지욕기생

judy663 2020. 9. 1. 11:43

죽간竹簡으로 된 논어, 출처 네이버

# 애지욕기생

'애지 욕기생?!' 한글만 두고 본다면 무슨 뜻인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다. 그 옆에 살포시 한자가 덧붙여진다면 아주 대충이라도 그 뜻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말의 반대말은 '오지 욕기사 惡之, 欲其死'인데 좋아한다와 반하는 말이니 그 뜻은 '싫어하면 그것이 못되기를 바란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접하고 있는 많은 말들 중에 애지 욕기생처럼 '온고지신溫故知新, 과유불급過猶不及' 등 '논어'에서 온 말들이 부지기수다. 사극을 봐도 사서삼경을 논하는 과정에 논어가 한 번씩은 언급되며 소싯少時적 역사책, 한자 시간에도 정말 많이 들어본 책이지만 막상 논어에 대해 아는 것은 아주 간단명료하다.

공자 사후에 그의 제자들이 그의 이야기를 엮었고 거기 제자들의 이야기도 조금 포함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는 책을 본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애지 욕기생 愛之 欲其生
무엇이든지 좋아하면
그것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마음

-논어 12편 안연顔淵 10장-중에서

공자의 조각상, 출처 바이두

그럼 무려 2,500년의 역사를 지낸 고전 중에 고전인 논어를 살펴보기 전에 중국 최초의 선생님이신 공자의 삶을 우선 좀 들여다보자.

공자는 B.C. 551년 노(魯)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70세의 아버지와 16세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어머니는 세 번째 부인이었다. 공자의 아버지는 첫째 부인과는 딸 아홉 명을 뒀고 둘째 부인 사이에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었다니 이때 공자의 탄생은 축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나이차를 들어 야합野合이라고 여겨지던 사회인식과 더불어 공자가 3살이 되던 무렵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마저 그가 17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회 편견을 안고 남편 없이 어린 엄마가 더 어린아이를 홀로 키웠을 애달픔과 그 아래 성장한 공자의 유년시절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쓰라리다.

어릴 때부터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성장한 공자는 15세 지학志學 (吾十有五而志于學)에 뜻을 세운 이후 55세에 노나라를 떠나 자신의 뜻을 펼칠 국가를 찾아 제자들과 함께 14년의 주유천하周遊天下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춘추전국시대 지도, 출처 네이버

당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로 기존의 가치가 무너진 혼돈의 시기였지만 이 절망의 시대 새로운 이념과 고뇌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제자: 여러 학자들, 백가: 수많은 학파들)의 출현은 절망 속에서 싹튼 희망이었다.

당시 공자는 실패한 사상가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의 사상은 분명 더 깊고 심오해졌을 것이다. 이상적인 자신의 사상을 펼칠 나라를 찾지 못 한 채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는 정치보다는 후학 양성에 힘을 쏟다가 B.C. 479년 73세의 나이로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공자의 무덤은 아들 백어伯魚, 손자 자사子思와 같이 산동성 곡부 공림孔林에 묻혀있다.

논어 1편 학이學而, 출처 네이버


이런 공자의 사상을 잘 드러낸 책이 바로 논어論語인데 이 책은 공자가 제자와 나눈 내용을 기록한 중국 최초의 어록집으로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편의 첫 두 글자를 따서 편명으로 삼았다.

예를 들자면 첫 편인 학이學而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가지고 왔다.

논어의 핵심 사상은 바로 '인 仁'으로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싶지가 않다. 우선 이 '인'의 한자를 살펴보자.


仁=人 +二


인의 글자 안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다. 즉 인仁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와 다른 사람(세계)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자는 순차적 사랑을 강조하는데
나 -> 가족 -> 국가 -> 세계
그 실천 방법으로는 각각 학學, 효孝, 충忠, 인仁을 들었다.



논어의 1편 학이學而에서 첫 단어로 학學을 언급했듯이 나 자신부터 배움을 즐기고 익힌다면 가족에게 효孝의 모습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에는 충忠으로 발현되어 궁극적으로 인仁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혼돈과 불신으로 팽배했던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던 공자는 서로 믿을 수 없다면 그건 사회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그 출발을 '가족 관계'에서 보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자식의 부모에 대한 신뢰가 좋은 사람이 되는 출발점이라고 언급한다.

빗방울이 만든 동심원, 출처 네이버 이미지

하나의 물방울이 떨어져 하나의 동심원을 이루어 이웃으로 퍼져 나갈 수 있으며 가족 간의 관계를 그 시작점으로 보았다.


공자의 인 사상은 증오와 불신으로 가득 찼던 약육강식의 시대에 희망의 불씨였으며 공자 자신은 이상적인 가치를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자 노력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2,50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아직도 논어論語가 회자되고 끊임없이 연구되는 이유는 변화지 않는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비록 춘추전국시대에는 너무 이상적인 사상으로 정책으로 사용되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논어의 인仁을 바탕으로 한 진리는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2010): 감독 후메이 출연 주윤발, 조우쉰


마지막으로 공자의 애제자 '안회顔回'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공자의 삼천 제자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고 아꼈던 안회는 공자보다 30살이나 어렸으면 그의 아버지 안로도 공자의 제자였다고 한다.

안회의 자는 자연子颜인데 공자가 유일하게 이름으로 부른 제자라고 한다. 당시 이름은 귀한 것으로 여겨져서 보통 어른이 되면 자字로 바꿔 불렀다고 하지만 가족이나 스승은 이름을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안회를 가족처럼 아낀 공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14년의 주유천하 시절 공자를 끝까지 모시고 다닌 제자이기도 했으며 공자가 유일하게 호학好学한다고 언급한 제자이다. 그의 나이 71세에 안회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영화 '공자 춘추전국시대'를 보면 안회가 물에 빠진 책을 건져 올리다가 익사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사실은 장기간의 유랑생활이 불러온 건강악화가 주요인이었다.

안회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공자의 말씀을 항상 경청하고 수용하는 제자였으며 사적인 자리에서는 공자의 사상을 실천하는 지성과 인품을 두루 갖춘 인재였다.

不遷怒 不貳過
불천노 불이과

공자가 먼저 떠난 안회를 칭찬한 말로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언급한 호학好學의 의미에는 학문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이런 인품까지 포함하는데 공자의 안회 바라기를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다.

P.S.
논어라는 깊고 심오한 고전을 평생 동안 연구하셨고 지금도 진행 중이신 수많은 분들 앞에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 어려운 주제로 글을 쓴다는 건 진정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처럼 공자, 논어, 인仁이라는 단지 단어를 벗어나 겉표면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