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흐르다

경계에 흐르다-금방 죽는다

judy663 2020. 12. 4. 00:34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초입 저녁을 먹기 위해 마당에 깐 덕석(볏집으로 만든 곡식을 말릴 때 주로  쓰는 
물건)에 누워 본 별통별은 나를 아주 다른 세계로 급히 이동시켰다. 그것은 당시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태초 같기도 종말 같기도 했다.

음험陰險 기운이 나를 훑으며 아주 천천히 지나갔으며 그 한기를 감당할 수 없어 방향을 잃고 끝없이
추락했다. 그 후로 몇 십 년 동안 속수무책인 채 식은땀을 흘리다 축축함으로 빠져 들었다.

그 의식을 치르던 16살을 기점으로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단절같은 내면의 두려움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만용蠻勇과 거친 숨결을 주었으며 그러면서도 시간이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천천히 배워 나갔다.

매일 치르는 의식은 '내가 금방 죽는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동시에 인생의 유한함을 알게 했다. 이런 큰학습
을 통해 내가 금방 죽는다는 체득體得은 오히려 두려움 대신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강한 의지를
심어주었다.

죽음에 대한 체득은 삶을 튼실하게 북돋우며 이를 아는 이는 바람직한 일보다는 '자기가 바라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게 만든다.

죽음은 경험되지 못한다. 경험하는 순간 주체의 자리를
이탈해 버리기 때문이다. 고로 죽음은 누구에게나 제3자의 일로 다가오며 정작 '죽어가는 사건'으로서 의식되지 못 한다.

죽음은 없다.
죽어 가는 일뿐이다.


죽음을 직접 닥치는 사건으로 체득하려면 죽음이라는
말과 함께 평정이 무너지는 내면이 동요하는 경험을 늘려 나가야 한다. 튼실한 삶을 위해 죽음을 의식적으로 자주 불러 들이고 인생은 '짧디 짧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천리마千里馬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忽然할 따름이다
                         -장자 지북유知北遊-


매일 아침 되뇌는 '나는 금방 죽는다'의 주문은
나 자신을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곳이 아닌
급한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집중시켜
그날은 나를 덜 쩨쩨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