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36

언어의 온도 01.말-066 헤아림 위에 피는 위로라는 꽃

# 헤아림 위에 피는 위로라는 꽃 '심야식당深夜食堂'은 앞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종이 달'에 이어 등장한 3번째 일본 영화인데 아베 야로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로 중국에서는 드라마와 영화로 각각 리메이크되었다. 자정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이 심야식당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등장하며 그 사연은 음식을 통해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손님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영화의 중심인 마스터는 '입'이 아닌 '귀'의 자세로 그들을 대한다. 그는 타인을 향해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데 오늘도 그들을 향해 이렇게 묻는다. "늘 먹던 거로?" 2020년 5월 말에 종방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 흔한 막장이라는 요소도 '응답하라 1997과 1988'에서 보..

언어의 온도 2020.07.02

언어의 온도 01.말-064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

"아빠, 옷 젖었어?" "아니… " 작가는 비 오는 날, 어린 자녀와 부모가 우산을 맞잡은 모습을 지켜보면 부모의 존재의 역할과 숙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다. 부모의 자식에게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전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어느 부모의 인터뷰 내용이 떠오른다. "만약 부모님이 입원하셨다면 이렇게 매일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90년대 IMF와 맞물러 아버지에 대한 존재가 부각되던 그 시절 김정현 소설의 '아버지'에서 그려지던 그 당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펑펑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딸이 지망하는 서울대 영문과 정원이 35명이라는 것을 알고 1년 동안 버스를 타도 35번 뒷 번호의 좌석에는 앉지 않을 만큼 남모르게 정성..

언어의 온도 2020.06.30

언어의 온도 01.말-060 우주만 한 사연

# 우주만 한 사연 작가는 어린 시절 낡은 잡지에서 읽은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사연인 즉 덜컹거리는 기차 안. 창밖을 응시하던 중년 사내가 돌연 "여보, 들판은 초록빛이네!" 남편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길 "맞아요. 제대로 봤네요. 여보!" 사내는 이후에도 흥에 겨워 말을 이어나가는데 "와! 태양은 불덩어리 같고, 구름은 하얗고, 하늘은 파랗고." 그들의 모습을 슬쩍슬쩍 엿본 기차 안 승객들이 술렁거렸고 누군가 입을 가린 채 아내에게 귀엣말을 건넸다. "아주머니, 남편 좀 병원에 데려가 봐요." 그 순간 객차 안은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때 아내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제 남편은 어린 시절 사고로 시력을 잃었어요. 최근에 각막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했고 오늘 퇴원..

언어의 온도 2020.06.25

언어의 온도 01.말-056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법

#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법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손으로 가리키는 미야자와 리에의 모습은 ‘그녀가 그토록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라는 '종이 달'의 문구와 어우러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영화 ‘종이 달’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배경은 1995년의 일본이다. 영화의 내용은 리카의 어린 시절과 1995년 현재로 나뉜다. 각각의 시간 속에서 리카는 두 남자에게 도움을 주는데 여고생 리카는 아버지의 지갑에서 훔친 돈으로 5살 남자아이에게, 은행원 리카는 은행에서 횡령한 돈으로 대학생 코타를 도와준다. 그들의 존재는 리카가 행위하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작가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위의 포스터 화면을 언급하는데 리카가 손으로 가리킨 건 다름 아닌 '초..

언어의 온도 2020.06.23

언어의 온도 01.말-050 진짜 사과는 아프다

# 진짜 사과는 아프다 '언어의 온도'의 작은 글들은 대개 2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진짜 사과는 아프다' 이 글은 무려 6쪽이나 할애되어 있다. 그만큼 작가에게 언급하고 싶은 주제가 아닐까 싶다. 에피소드 1: 작가는 기자 시절 사소한 다툼으로 불편하게 지내던 선배가 불쑥 '사과' 한 알을 주고 사라진 후에 그 사과를 받아들이 듯 사각사각 한입 베어 먹었던 추억을 얘기한다. 사과하고 싶었지만 '미안해, 기주야' 대신 내민 '사과'. 쑥스러움에 사과를 내밀었지만 그런 성격이었다면 사과를 준비하고 내밀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불쑥 이전 '꽃보다 남자'에서 구혜선이 이민호에게 내민 사과가 생각나서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에피소드 2: 작가가 백화점에서 본 '염치'에 관한 일을 언급한다. 염..

언어의 온도 2020.06.18

언어의 온도 01.말-048 언어의 온도 01.말-048 길가의 꽃

# 길가의 꽃 작가는 오래전 기억 속에 화단에 핀 꽃을 두고 오간 대화를 떠올린다. 동료: "예쁜데, 우리 조그만 꺾어 갈까?" 경비 아저씨: "그냥 지나가며 보도록 하게, 주변 풍경이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이 반감될 거야. 책상 위에 꽃과 지금 보는 꽃은 다를 거야." 올봄은 나에게 주위를 산책하며 자연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의 소리 매화, 개나리, 목련, 벚꽃은 나같이 식물 문외한門外漢 이들도 알고 있는 대표적인 아이들이다. 그리고 나의 지식은 동화책 '강아지 똥'의 힘으로 피어난 민들레까지 포함된다. 시간적 여유와 *이* 렌즈로 바로 찍어 알 수 있는 편리함 덕분에 길가에 꽃들에게도 급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곳곳에 피어있는 개망초와 금계국이..

언어의 온도 2020.06.16

언어의 온도 01.말-044 부재의 존재

# 부재의 존재 언어의 온도에는 수많은 영화들이 언급되는데 그중에 일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글은 시작된다. 일본 영화를 많이 접해 보지 못한 나지만 리뷰를 보니 '러브레터'처럼 은은한 내용의 영화인 듯하다. 영화는 15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간 그곳에서 세 자매는 이복동생 스즈와 대면하게 되고 이렇게 네 자매의 새로운 생활이 자그마한 바다 마을에서 잔잔하게 전개된다. 영화에서는 유독 밥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멸치 덮밥, 해산물 카레'는 부재인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그리운 맛으로 표현된다. 누구에게나 그리운 기억을 호출하는 음식은 존재할 것이다. 나에게 '감자 크로켓'은 여고시절의 즐거움으로 대변된다. 갓 튀겨낸 크로켓 속에 터질 듯이 자리 잡은 감자 샐러..

언어의 온도 2020.06.11

언어의 온도 01.말-041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

영화 에서 유지태는 이영애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사랑이 어떻게 변화니?" 그들의 뜨거웠던 사랑은 이렇게 소멸되어 간다. 영화의 제목처럼 봄날은 간다. 작가는 7년 넘게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배의 취중 발언을 언급하는데 " 선배, 우린 목적지 없이 여행길에 올랐던 것 같아요. 목적지 없이." " 괜찮아요, 곧 잊을 테죠." 그렇지만 목적지를 설정하고 시작하는 사랑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설령 목적지를 정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정 변경되어 다른 목적지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의 말처럼 사랑도 생명체처럼 생성 변천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면 사랑의 생성은 봄날이며 변천은 변심이며 소멸은 이별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 간단하지만 않은 것이 사람의 일이라 사랑이 변천되어 소멸되지 않고 옅어져 우리가 흔히..

언어의 온도 2020.06.09

언어의 온도 01.말-039 당신은 5월을 닮았군요

5월을 가장 좋아한다는 작가는 5월의 속성을 '자라다'로 요약한다. 나도 매년 5월의 연두색 파릇한 잎들을 보고 있으면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처럼 자동 엄마 미소가 만개한다. 5월을 뜻하는 May는 그리스 신화 속 풍요와 증식의 여신 '마이아 Maia'에서 왔다고 한다. 영어 단어의 70% 이상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니 그리스 신화 속의 무수한 인물과 단어들이 영어 속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5월을 좋아하는 작가는 몇 해 전 한 여인을 향해 "당신 정말이지 5월을 닮았군요"라고 살포시 고백했다고 한다. 후일담은 알 수 없지만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건 '사랑해요, 좋아해요'가 아닌 제가 5월을 좋아하니 제가 좋아하는 당신도 '5월처럼 아름답군요. 5월처럼 좋아합니다.' 이런 은유와 비유의 표현..

언어의 온도 2020.06.04

언어의 온도 01.말-035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오

#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오 추돌 사고가 난 직후 허리가 조금 굽으신 어르신은 뒷좌석으로 가 몸을 웅크린 채 파르르 떨고 있던 작은 체구의 할머니를 살포시 안았다. " 세월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당신을 염려하오." 추돌 사고를 목격한 작가는 노부부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와 비슷한 빛깔의 사랑을 하나 더 소개하고 싶다. 어느 중국 방송 내용인데 코로나로 집에 머물게 된 손녀의 눈에 비친 조부모의 모습을 담아냈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바친 할머니. 할아버지는 지금 병상에 누운 할머니를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저녁에는 그녀의 손과 발을 정성스레 닦아 준다. 한 번도 입 밖으로 '사랑하오'란 말을 내뱉지 않았지만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파스텔 빛깔 사랑이다. 2015년 가을 나..

언어의 온도 2020.06.02